화산과 같은 열정, 바람과 같은 자유! - 에스테반 산체스



코르토가 '20세기의 음악적 천재'라고 평했고, 바렌보임이 스페인의 숨겨진 보석이라고 극찬한 스페인의 피아니스트 에스테반 산체스(1934-1997)! 알프레드 코르토의 제자로서, 스페인 피아니스트가 국내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상을 비롯, 파리의 마르게리트 롱 국제 콩쿨, 부조니 국제 음악상, 알프레도 카셀라 상, 디누 리파티 메달 등 수많은 상을 휩쓸며 국제적 명성을 쌓아가던 산체스. 그는 갑자기 이런 모든 명성을 포기하고, 그의 고향인 스페인 남부지방의 전원적 일상으로 돌아가 한평생을 평범한 피아노 교사로서 보냈다. 이런 평화로움과 자유로움을 사랑한 그의 소박한 삶과는 다르게, 그의 연주는 '피아노의 푸르트벵글러'라는 명성을 낳을 정도로 화산과 같은 열정과 눈부신 즉흥성, 충만한 동적 에너지, 그리고 깊은 시정을 간직한 짙은 낭만성을 보여준다.

에스테반 산체스 헤레로(Esteban Sanchez Herrero)는 불꽃과 같은 연주를 선보였던 피아니스트이다. 그의 연주는 빛과 색채 그리고 개인적이고 흉내낼 수 없는 열정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또한 그가 갖춘 신비한 직관적인 능력은 항상 그를 좋은 음악적 해석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그는 강한 설득력을 소유한 피아니스트였고, 소리의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였다. 또한 그는 깊은 시적 서정 없이는 심오한 음악도 없다고 확신하였으며, 그 자신만의 방식과 스타일로 알베니스, 파야, 그라나도스, 투리나 등을 비롯한 스페인 음악의 최고봉뿐만 아니라 베토벤 협주곡과 소나타, 슈만의 내밀함 그리고 멘델스존, 라흐마니노프의 표현적 비루투오지, 혹은 생상스에게서 보이는 후기 낭만의 우아함 등도 펼쳐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에스테반이 지극히 개성적이었음에도, 동시에 또한 엄격하게 분석적이었다. 그의 천부적 지성, 그리고 자기 취향에 따른 수많은 독서를 통해 스스로 습득한 문화적 지식이 그를 매력적인 변설가로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스타가 될 재능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의 정서와 신념은 천성적 소박함을 좋아하고 허영을 멀리하게 해,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그의 경력을 미미한 것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에스테반 산체스는 엑스트레마두라(Extremadura) 지방의 바다호스(Badajoz)의 사랑스러운 도시인 오레야나 라 비에하(Orellana la Vieja)에서 1934년에 태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플라센시아 성당(Plasencia cathedral)의 유명한 콰이어마스터였던 그의 할아버지 호아킨 산체스 루이스(Joaquin Sanchez Ruiz)에게서 음악을 수학했다. 1945년 마드리드의 레알 콘세르바토리오(Real Conservatorio)에 가서, 호세 트라고(Jose Trago)의 뛰어난 제자였던 훌리아 파로디(Julia Parody, 말라가 1890 - 마드리드 1973) 선생 밑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호세 트라고는 쇼팽의 제자였던 게오르그 마티아스(George Mathisa) 밑에서 공부했었다.) 산체스는 파리에서 알프레드 코르토(Alfred Cortot)와, 그리고 로마에서는 카를로 체키(Carlo Zecchi) 밑에서 학업을 완성했다. 카를로 제키는 1954년 12월 3일 스페인의 수도에서 환영 공연을 지휘했는데, 이 때 산체스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성공리에 협연했다. 코르토가 산체스에 대해 '20세기의 음악적 천재'라고 평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산체스는 볼자노(Bolzano)의 페루치오 부조니 국제 음악상을 수상했고, 나폴리에서 알프레도 카셀라 상을 수상했으며, 로마의 산타 체실리아 아카데미에서 비루투오지즘 상을 수상했다. 이런 수상에 앞서, 그는 이미 스페인에서 한 피아니스트가 수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상을 휩쓸기도 했었다. 그리고 런던 공연 후에는 헤리어트 코헨 재단으로부터 디누 리파티 메달을 수여받기도 했다.

그는 국제적 레이블들을 위해 여러 레코딩을 제작했으며, 한결같이 리뷰어들에 의해 마치 새로운 발견인양 주목을 받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르셀로나에서 프로듀서 안토니오 아르메트(Antonio Armet)는 알베니스, 투리나, 베토벤, 포레 작품들을 가지고 일련의 녹음들을 완성한 것이다. 이 녹음들은 당시의 시기와 정황(1869-1974)을 고려해보면 최고의 기술적 정밀도를 지닌 것으로, 1997년 2월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한 예술가의 인생에 대한 소중한 기념비라고 할 만하다. 이 레코딩 가운데 전무후무할 기념비적인 작품, 알베니스의 <이베리아>도 속해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에스테반 산체스는 그의 고향에서 사망했다. 그는 1978년 귀향한 뒤 바다호스 콘서바토리에서 평범한 교사로서 레슨을 진행하며, 고향의 공기를 마시고 주위의 경관을 즐기며 소박하게 생활했다. 아마도 그는 대도시의 소란과 압박감, 직업적 근심, 문제들, 경쟁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그의 일생을 그가 원하던 대로 살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명성과 도시를 버렸다고 할 수 있다. 메시앙과 마찬가지로 <이베리아>를 특히 사랑하는 다니엘 바렌보임은 그의 레코딩들을 발견하고 나서, 열광적인 칭찬 속에서 경이에 찬 의문을 표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어떻게 스페인은 이런 경지의 연주자를 숨겨놓을 수 있었던 것인가?" 오직 하나의 대답만이 가능할 뿐이다. 에스테반 산체스 자신이 그의 길을 선택했고 그의 인생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런 선택에 직면했을 때 다른 어떤 것도 그를 강요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인간성 속에서 한 피아니스트가 가장 사랑하는 하나의 실존적 가치는 바로 '자유'였기 때문이다.

일반적 피아니스트들이 누리던 거대한 유럽의 중심들 간의, 혹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에로의 연주 여행을, 그의 삶 속에서는 그가 가르쳤던 바다호스와 그가 출생지인 오레야나 라 비에하 사이의 짧은 여행이 대신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피아니스트가 짧은 죽음을 맞이한 것도 이런 일상의 여행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그의 죽음은 평화로운 그의 짧은 생에와도 잘 어울리는 것이라 할만하다.

에스테반 산체스에게 있어,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음악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면밀한 연구와 세밀한 분석 후에, 꿈을 현실로 바꾸는 작업이 시행된다. 이전에 생각되고 느껴졌던 음향과 뉘앙스, 음색 등을 발견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그 피아니스트의 굳은 얼굴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가득하며 다시금 혈색을 되찾는다. 꿈과 현실의 이 놀라운 결합은 그의 매연주에 있어 영속적이어야 했다. 에스테반 산체스가 <이베리아>를 연주할 때마다 그는 감상자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음악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음악을 파급적 영향력을 지닌 것이어서, 강렬한 감상 후에는 어김없이 청중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모두가 만장일치의 견해를 가지고 우리가 들은 산체스의 연주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유일한 가능한 언급은 가브리엘 포레가 그 작품의 작곡가 알베니스에게 헌사한 말을 이 특출난 <이베리아> 연주자에게 적용하는 것뿐이다. "에스테반 산체스가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서 오직 에스테반 산체스뿐이다." (엔리케 프랑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