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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국내제작음반(classic) > Album Introduc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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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악 오케스트라로 듣는 우리 가곡 모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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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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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진, 김성태, 현재명, 이흥렬, 장일남, 김규환, 김순애, 김연준,이호섭, 이수인, 윤용하, 홍난파, 김원호, 나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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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 아티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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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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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
국내제작음반(classic) / 가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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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블 |
C&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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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음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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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음방식 |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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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탈로그 넘버 |
CNLR05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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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코드 넘버 |
8809144347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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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형식 |
SAC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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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오케스트라로 듣는 우리 가곡 - 모향(慕鄕)
또렷하게 떠오르는 우리 마음의 고향
가곡은 단지 노래가 아니다. 가곡에는 작곡가가 거닐던 그 나라의 공기가 떠다닌다. 슈베르트의 리트를 들으면 빈 근교의 아름다운 봄 공기가 청명하게 다가오고 맑은 개울이 돌돌대거나, 차고 깨끗한 겨울의 대기가 입김이 불어질 듯하다. 이탈리아 가곡에서는 나폴리의 태양과 향긋한 피자 냄새가 활기를 북돋우고 포스터의 미국 가곡에서는 고향을 잃은 흑인들의 설움이 서려 있는 오두막과 광활한 남부의 목화밭 냄새가 난다. 우리나라의 가곡에도 우리 민족혼과 우리의 정서가 떠다닌다. 유난히 많은 구릉과 산, 흰 구름이 떠 있는 논둑길, 그 멀리서 머리에 새참을 지고 우리의 어머니가 걸어오고 있다. 멀리서 뻐꾸기가 운다. 우리 가곡을 들으며 떠올리는 모습이다. 무엇이 한국의 소리이고 한국의 향기인가. 반드시 질그릇에 담아야 한국의 음식일까. 서양음악이 유입되고 이 땅에 자리잡게 되면서 서양 음악 기법에 의한 창작품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식보다는 내용일 것이다. 음악에서의 기법이란 일종의 수단이지 기법 자체가 내용은 아닌 것이다.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향기를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느냐 질그릇에 담느냐의 문제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담느냐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한국 양악의 역사에 있어 1885년을 하나의 기점으로 삼는 까닭은 그 해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국 땅을 밟았기 때문이다. 서울과 평양에 새로운 교육기관이 설립됐는데, 서울의 이화, 배제, 그리고 평양의 숭실과 같은 학교였다. 이들 학교에서 찬송가를 통해 양악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앞서 중국을 통해 서양음악을 접한 기록도 있다. 본격적인 양악의 유입은 역시 1885년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때부터 양악 기법을 전수 받아 우리 가곡이 만들어진 것은 1920년대에 들어서서야 가능했다. 초기의 우리 가곡은 찬송가나 창가조의 범주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런 만큼 선율의 흐름도 양악 음계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나라 잃은 설움과 북받쳐 오르는 울분을 음악 속에 담아 냄으로써 민족의 노래로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다. 가곡은 보다 구체적인 가사가 곡조와 조화를 이루었고 그로 인해 노래하는 사람이나 노래를 듣는 사람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경험하게 됐다. 비감하면서도 고향을 느끼게 하는 서정적인 노스탤지어는 집단적 감동과 흥분을 맛보기에 충분한 것이어서 삶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 수 있었다. '예술가곡'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5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1955년 한규동이 '한국 가곡집'이라는 노래책을 엮음으로써 본격화 된 것이다. 물론 '가곡'의 어원은 우리나라 전통 음악인 시조시에 관현악반주를 얹어 부르던 노래에서 비롯됐다. 개화기 이후에 이것이 동양과 서양의 노래 전반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단편적으로나마 쓰여진 것도 1940년대 후반부의 일이 아닌가 한다. 가곡이라는 옛말을 빌려왔지만 독일 리트를 표방하려고 한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형성 과정이 어떻든 간에 가곡이라는 노래의 형태는 우리 민족에게는 거부감 없이 포근한 이불처럼 다가오는 장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잠시 우리 가곡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 보기로 하자.
1920년대 작곡된 홍난파의 '봉선화'로부터 시작된 한국예술가곡의 역사는 우리 근대사에서 숨을 쉬던 민족혼의 역사이기도 하다. 1931년 미국에서 귀국한 현제명이 작곡집을 출간했다. '고향생각' 등이 포함된 이 작품집은 1930년대 우리 예술가곡의 개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 뒤 독일에서 돌아온 채동선이 몇 편의 노래를 발표하고 '독창곡'이라 이름 붙여진 이 노래들은 시의 선택과 작품의 내용에서 당시로서는 새로운 면을 보여주게 된다. 1933년 10월에는 조선음악가협회 주최로 현제명, 홍난파의 작품 발표회가 있었다. 1937년 당시 일본에서 작곡 수업을 하던 김성태가 정지용의 시에 의한 세 개의 가곡을 작곡했다. 노래와 피아노가 유기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독일가곡 구성에 접근했고, 이름도 예술가곡이라고 이름 붙여, 예술가곡이라는 이름을 쓴 것은 이 때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성태는 1939년 일본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본격적인 작곡을 수업한 첫 번째 사람이 된다. 1940년대의 '암흑기'에는 우리 가곡이 여전히 우리말로 노래함으로써 모국어가 없던 시절에 모국어를 지키는 일을 담당하기도 했다. 조국광복과 함께 민족의 말을 찾은 우리는 가곡의 작곡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러나 막상 해방이 되고서는 대중가요성 노래들이 범람하게 된다. 1948년 음악평론가 박용구가 '신천지'에 기고한 글을 인용해 본다. 그는 '이 땅에 서양음악이 들어온 지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식민지의 왜곡된 자본주의 체제 밑에서나마 개성의 자각은 시에 있어서 경향시, 순수시, 심지어는 상징시의 스타일까지 모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창작의 중심이 되어 온 가곡에 있어서는 3화음 시스템을 기조로 한 소박한 창가 형식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 사실'이라고 쓰면서 당시의 가곡 전체의 창작 분위기를 서술한 것이다. 해방 이후 가곡 분야에는 나운영, 김순애 등이 새 얼굴로 등장했다. 1949년에는 윤이상의 가곡집 '달무리'가 출간되었고, 1949년 출간된 필하모니아 지에는 '5음 음계는 더욱 세련될 것이며, 민족적 향기의 탐색 앞에 개성이 희생됨으로써 진정 그 자신의 본연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는 평이 실렸다. 1950년 6.25전쟁과 함께 가곡의 창작계는 김동진, 김대현 등의 작곡가들을 새로 맞아들였고, 부산 피난시절 나운영, 이상근의 작품이 출현, 조성에 얽매이던 가곡 작곡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어서 1954년에는 김순애의 가곡집이 출간되었다. 1955년에는 앞서 언급한 '가곡'이라는 용어를 일반화시킨 한규동 편 '한국가곡집'이 출간되어 당시까지의 우리나라 가곡을 집대성했다. 여기에는 금수현, 김대현, 김동진, 김성태, 김세형, 김순애, 나운영, 이흥렬, 임원식, 윤이상, 현제명, 홍난파 등의 작품이 수록됐다. 이와 함께 1950년대에는 윤용하, 이호섭, 조념, 그리고 후반에 김형주, 김달성 등의 작품집이 추가된다. 1950년대 후반부터 전후세대의 가곡작품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현대적 의미의 가곡 시대를 열게 된다. 20세기를 반으로 나누는 1950년대까지가 우리나라 가곡의 정착기였다고 한다면 1960년대부터는 새로운 예술가곡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1960년대 이후는 뜻있는 작곡가들이 앞다퉈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시작한 때이다. 성악가들이 우리 가곡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때이며, 언론 매체가 음악매체로서 우리 가곡을 다루게 된다. 음악 출판업자들도 우리 가곡 출판으로 채산을 맞추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많은 작곡가들이 출현하게 됐고, 개성있는 음악성과 깊이 있는 표현기법으로 예술가곡의 경지를 정착시켜 나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조두남, 김대현, 조념, 김달성, 구두회, 윤용하, 하대응, 이호섭, 이상근, 정회갑 등의 작곡가들이 개성있는 작품들을 냈고, 김연준, 유신, 장일남, 김진균, 박재열, 박은희, 백병동 등의 가곡이 양산되기에 이르렀다. 독창회 무대에서 우리 가곡을 듣기 어렵지 않게 되었고, 음반사들도 우리 가곡 음반을 발매하게 된다. 지금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와 홍혜경의 전곡 음반,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와 호세 카레라스 등의 보너스 트랙 녹음 등 한국 가곡의 매력은 레코드 업계에서도 효과를 톡톡히 인정받고 있다.
이번 음반은 김동진의 '저 구름 흘러가는 곳'으로 시작된다. '가고파'의 작곡자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가곡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내 마음' '목련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양식은 한결 같이 감동적이다. 화성을 잘 이해하고 변화가 많은 피아노 서법도 설득력이 있지만 그의 진면목은 무궁무진한 선율선에 있다. 이어지는 '동심초' 와 '한 송이 흰 백합화'는 김성태의 곡이다. 치밀한 작곡의 짜임새를 알 수 있는 많은 가곡들이 있지만, '산유화'와 '동심초' '한 송이 흰 백합화'야말로 그 독특한 서법을 찾아볼 수 있다. 해방 후 그가 주장한 4도, 5도를 주로 한 첨가화음으로 매우 적절한 한국적인 정감을 표현한다. '비목'의 작곡가 장일남은 이북 출신이다. 김동진과 마찬가지로 장단 양선법을 교묘히 혼용한다. 일찍이 우리 가곡 가운데 대중성이 높은 곡들을 골라 관현악으로 편곡한 바 있으며, 인기 높은 성악가들을 통해 전국적으로 널리 보급시킨 공을 인정받아도 좋을 것이다. 장일남의 편곡 기법은 매우 적절하고 효과적이어서 원곡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여성 작곡가 김순애의 작품도 이번 음반에 '꿈길'과 '4월의 노래' 등 두 곡이 실려 있다. 많은 그의 가곡에서 여성 특유의 정감이나 표현을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피아노 서법에는 오히려 남성적인 성격도 다분하다. 다만 기독교적인 속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그렇지 않은 작가와 구별될 뿐이다. 가을 속에 빠지는 '아! 가을인가'의 나운영은 불필요한 설득을 배제한 간결한 대위적인 처리가 돋보이는 작곡가다. 본인이 마니아를 넘어선 음악애호가이기도 한 그의 작곡 기법은 적절한 임시음 처리와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대위적 저음처리로 범상치 않은 면모를 노출한다. 지휘자 최용호가 유럽의 불가리아에서 활동할 무렵,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의 시립 음악단체인 소피아 솔로이스츠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녹음한 이번 음반은 현악기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녹음임에도 불구하고 클라리네티스트 출신답게 그의 확고한 음정과 한국인의 서정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현지의 합창단을 섭외해 노래까지 붙일 예정이었지만 순수한 시정을 살리기 위해서 오케스트라의 무언가로 완성했다. '헨슬러' '펜타톤' 레이블을 비롯, 수많은 음반들의 탁월한 마스터링을 해낸 바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톤 마이스터 최진의 참가도 이 음반을 빛내 준다. 장인의 손길로 우리나라 최초의 SACD를 만들어 냈다. 이 땅에 양악이 들어온 후 근대화 과정 속에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숱한 시련과 그 속에서 표출된 아픔과 고독, 이별, 고향, 그리고 그리움의 정서를 가장 한국적으로 풀어낸 대표작들이다.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을 노래들이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은빛으로 빛나지만 차갑고 싸늘한 도시의 삶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음악적 DNA 하나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인간을 향한다고 어느 광고 카피는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SACD를 통해 '온몸으로' 수렴하는 연주를 담은 이 음반은, 기술이 그야말로 마음을 향하는 하나의 표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류태형|월간 '객석' 기자
최용호, 지휘자(Choi, Young Ho)
지휘자 최용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였다. 그는 재학시 학교 정기연주회의 솔리스트로 출연하였고, 졸업시 모범상(총도앙회자상)을 수상하였다. 대학원 과정은 단국대학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전공을 하여, 국내 제1호 지휘전공 졸업자로 기록되었다.
대학원 과정 중 이미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인천시립 교향악단 부지휘자로 발탁되어 2년간의 경험을 가졌고, 선화예고, 서울예고, 상명대, 성신여대, 한양대 등에서 클라리넷 전공실기, 실내악, 관악합주, 오케스트라, 지휘법, 음악감상 등을 강의하였으며, 4년간 KBS FM 세계 명연주가의 정기해설자로 활동하다가 지휘자로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이탈리아에서 아카데미아 무지칼레 페스카레세에서 이탈리아 최고 학부 전문자 과정인 수페리오레 알토 페르페치오나멘토 3년 과정을 밟으며 마리아 구셀라와 도나토 렌체티에게 사사하여 유럽에서 다시 한번 오케스트라 지휘전공 학위를 취득해 졸업하였다.
그 후 목원대학 조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는 불가리아에 거주하며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탈리아, 그리스, 영국, 러시아, 마케도니아, 폴란드 등에서 지휘하였고, 특히 불가리아에서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메이저 오케스트라와 19개의 단체를 지휘하였는데, 한번 관계를 가진 단체는 어김없이 그를 재초청하는 등, 놀라운 연주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연주 외에는 그는 왕성한 녹음 활동도 병행하고 있어, 현재 불가리아 최대 음반사인 GEGA와 계약을 맺고 있으며, 지금까지 십 여장의 지휘 녹음 음반을 출시하고 있다.
그간 마케도니아 필하모니아의 수석객원 지휘자를 역임했으며, 현재 불가리아의 3대 교향악단 중 하나인 플로디프 필하모니의 수석객원지후자, 소피아 아마데우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수석상임 지휘자로 있으면서 연간 30여회의 연주와 녹음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소피아 솔로이스츠 체임버 오케스트라
세계적인 음악 엘리트로서의 자리를 지속적으로 지켜오며 생동감 넘치는 앙상블을 자랑하고 있는 소피아 솔로이스츠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불가리아 소피아시의 유일한 시립소속 앙상블로, 남성들만으로 구성된 단체이다. 이 단체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바실 카잔디에프(Vasil Kazandjiev)에 의해 1962년 창단되었으며, 그 후 1979년부터는 현재 소피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는 에밀 타바코프(Emil Tabakov)가 제 2대 지휘자로 10여년간 오케스트라의 예술 감독을 맡아 그 위상을 한층 높였다. 그의 뒤를 이어 1987년부터 지금까지 프랄멘 뒤로프(Plamen Djurov)가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다.
1996년 한국을 방문, 그 지가를 보여주어 우리에게도 이 단체가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미 미국, 일본, 터키, 러시아와 유럽 전역에 초청되어 가진 공연들을 대성공으로 장식하며, "정확성, 미묘한 음색이 풍부한 멜로디, 표현력 넘치는 연주로 뭉쳐진 솔로이스트의 앙상블"이라는 호평을 각종 비평가들로부터 이끌어 낸 바 있다. 소피아 솔로이스츠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이 외에도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그시스, 마케도니아, 노르웨이, 호주,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체코 등 해외에서도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으며, 프랑스와 독일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서는 1등상을 수상한 바 있고,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와 류블랴나, 스페인의 산 세바스티안과 산탄데르, 이탈리아의 시타 디 카스텔라, 파리의 페스티발-이스티발, 벨기에의 루벵, 노르웨이의 베르겐 페스티발 등 다수의 국제 페스티발에서 완벽한 앙상블을 선보여 많은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소피아 솔로이스츠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불가리아의 저명한 작곡가들, 지휘자들, 솔로이스트들과 협력해왔다. 그 중 마린 골레미노프, 콘스탄틴 일리에프, 도브린 페트코프, 필립 쿠테프, 민초 민체브 등과의 협력 작업은 일상적인 예술적 협업 이상의 것이었다. 따라서 불가리아 작곡가들의 매력적인 작품들 중 상당수가 이 오케스트라를 위해 창조된 것이라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수십 년 동안 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 외국 지휘자와 솔로이스트들을 모두 언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하인리히 셰링, 하인츠 홀리거, 다닐 샤프란, 니카노르 자발레타, 패트릭 갈로이스, 나이젤 케네디 등을 꼽을 수 있다.
소피아 솔로이스츠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바로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여곡의 폭넓은 레퍼토리를 섭렵하고 있는데, 그 중 다수의 작품은 발칸톤, 하모니아 문디, 콜롬비아, 게가 등 메이저 레이블 음반회사들에 의해 녹음, 70여장의 음반이 출반 되었으며, 1998년에는 한국의 서울 음반에서도 최용호의 지휘로 <세레나데> 음반이 출시된 바 있다.
소피아 솔로이스츠 체임버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된 많은 불가리아 작곡가들의 곡들 중 다수의 작품들이 이 악단을 통해 그 빛을 발하고 있으며, 이 단체를 위해 헌정된 곡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현재 소피아 솔로이스츠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표현력 넘치는 연주와 정교한 곡 해석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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